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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자아탐구, 자기인지.‘스스로 변화시켜라’

by sdrr23 2020. 4. 11.

  훌륭한 사람들이 이런 조언을 해준다.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혹은 ‘너를 스스로 변화시켜라’ 두 가지 조언 모두 훌륭하게 들린다. 하지만 이야기를 끝내고 돌아서자, 조언을 들으면서 고무되었던 긍정적인 감정들은 어디론가 사리지고 없다. 나는 변화도 성취감도 없는 일상이 계속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 자책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뭐라고 생각했냐하면,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어’ 혹은 ‘나는 나를 변화시키지 못했어’라고. 여하튼 두 가지 생각을 번갈아하다보니 뭔가 헛소리를 되풀이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새로운 질문을 한다. ‘어떻게 있는 그대로를 긍정하면서 변화를 바라는가?’, ‘아니, 애초에 있는 그대로 긍정해야 할 대상은 무엇이며, 변화시켜야 하는 대상은 또 무엇인가?’

 

  모두 재귀적인 문장들이다.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혹은 ‘나는 나를 변화시킨다’ 이 문장의 연언은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변화시켜야한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의미를 잘 모르겠다. ‘받아들이면서 변화시킨다’는 말이 무슨뜻인가? 최소한 내 뇌와 길라임의 뇌를 바꿔치기해서 ‘시크릿 가든 놀이’를 하라는 말은 아닐것이다. 정신분열증에 걸리기 위해 노력을 하라는 말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저 서술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개 이상의 대상 속성이 필요하다. ‘나’라는 지칭어에 내재된 서로 다른 속성들을 파악해야하는 것이다. 질문이 감당 할 수 없을만큼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심신이론이나 의식에 대한 이야기는 배제하기로 한다. 성격적인 속성에 국한해서 잠깐 이야기를 해볼 생각이다.

 

  성격은 ‘환경에 대하여 특정한 행동 형태를 나타내고, 그것을 유지하고 발전시킨 개인의 독특한 심리체계’로 정의된다. ‘나’의 속성을 성격에 관한 것으로 국한했는데도 여전히 막막할정도로 검토해야 할 의미의 범위가 넓다. 이미 성격의 정의에 ‘유지하고 발전시킨다’는 서술어가 들어가서 순환적인 문제가 생긴다. 또한 ‘환경에 따른 행동 변화’나 ‘성격의 구성 요소’를 먼저 해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든다. 질문을 더 복잡한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성격에 관한 언어 자체를 뜯어고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언명들 사이에 새로운 정합성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성격을 확률적인 심리 속성으로 파악하면 어떠한가? 가령 철수는 내향적일 수 있다. 여기서 내향성은 철수가 항상 집구석에 틀어박혀서 음식물 쓰레기랑 같이 썩고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10일 정도 관찰을 하면 철수가 7일 정도는 외출을 하지 않는 상태를 ‘내향적이다’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철수는 3일정도는 밖에 나가서 놀기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할아버지가 된 철수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나는 내향적이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떠한가? 성격 속성을 측정 할 수 있는 시행자체가 10일에서 약 29,000일로 늘어난 것이다. 내향성이라는 단일한 속성은 측정 시행의 크기나, 시간의 길이에 따라 다시 세분화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질적으로는 같지만 양적으로는 다른 속성들이 고려될 수 있다. 즉, 심리적 속성이란 항상 참이되는 성질이 아니라, 개연적으로 참이 될 수 있는 속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제 첫 문단에서 언급한 두 가지 언명을 일관되게 해석 할 수 있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대상>은 성격의 단기적인 속성을 말하는 것이다. 가령, 영희는 평소엔 말이 없지만 노래방에만 가면 머리를 풀고 춤을 춘다. 단기적인 확률 추론은 ‘영희가 조용하다’와 ‘영희가 활발하다’라는 상반된 인상을 ‘모두’ 인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심리 속성을 확률 속성으로 이해하면 사람에 대한 초두효과나 후광효과를 줄여서, 특정 인물을 과도하게 비난하거나 우상화하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또한 자기 자신의 비일관성을 일관되게 이해하면서 향후의 행동방식이나 심리적인 태도에 변화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장기적인 성격 속성은 어떠한가? 노래방에서 춤을 추던 영희가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말이 없어진다. 그리고 똑같은 일상이 아주 오랫동안 되풀이되면 춤추는 영희는 영희가 가진 속성의 극히 이례적인 변칙사례에 불과하게되는 것이다. 어떤 시점에서 아주 조용했던 사람은 다음 시점에서는 보다 활발할 확률이 높다. 역으로 아주 활발한 사람은 사교활동이 끝나면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조용하게 휴식을 취할 확률이 높다. 심리적 사건의 시행이 늘어날 수록, 매우 높은 가중치가 부여되었던 예외 시행들은 속성의 평균치로 수렴한다. 이를 평균으로의 회귀(regression toward the mean)라고 한다.

 

  이제 <스스로를 유지하면서 변화시켜라>라는 언명을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분명히 자신이 가진 비일관성 속에서 일관된 속성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성이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바람직한 속성이라면 그것을 증진시키려고 장기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번 지하철 노숙자에게 적선을 했다고 대단한 자선가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값싼 동정심이 테레사 수녀가 보여주었던 존경할만한 연민이 되려면 심리적 속성이 가진 평균치 자체를 끌어올려야한다. 젊을 때가 좋다고하는 이유는, 살아온 날이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람직한 성격 속성의 평균치를 더 끌어올리기 쉽다는 것이다. 반면 나이가 들면 지나간 날들은 많아지고 남은 나날은 적어지기 때문에, 더 이상 성격 속성의 평균치를 끌어올릴 수 없게된다. 혁신은 혁명보다 어려워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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