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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좋은 글들)

자아정체성 찾기, 자아발견, 자기변화

by sdrr23 2020. 4. 12.
 

안녕하세요.

님의 이야기 잘들었습니다.

 

그죠..저도 5,6년을 님과 완전 같지는 않겠지만

비슷한 경험을 해보았기에 조금은 님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전 20대 초중반부터 나란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기시작했습니다.

물론 곧바로 이런 고민이 든 것이 아니라

나와 타인.타세계사이의 괴리감이 느껴지더만 그로 인한 고독.우울함이

나란 존재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것 같더군요.

 

나란 존재에 대한 고민...동시에 밀려오는 우울은

그당시 일기장에 빼곡하게 흔적을 남겼고

현실에 우울과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해결..탈출하기 위해  함께했던

수많은 좋은 책들과 아름다운 음악.

여행가서 찍은 사진으로 지금 저의 곁에 풍성한 흔적들이 남겨져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어느정도 삶에 대한 고민을 해결한 상태이기에

여유와 행복함으로 지나간 흔적들(일기장.책.음악.사진등)을 한번씩 뒤적혀보면

부끄러운듯하면서 나름 치열했던 그떄기억이 떠올라

살포시 웃음이 지어지더군요.

 

 

이런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물론 저의 이야기들이 님에게 완전한 답은 아니겠지만

비슷한 경험들을 공유하면서   힘든 마음에 자그마한  여유와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우리 인간은 태어나면서 자신이 만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태어나면서 부모님이 만든 이름,부모님의 가치관에 자라나고

자라면서 친구.학교..그리고 사회란 더 큰 울타리에서 자랍니다.

 

한번도 자신의 존재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하지 않고 이렇게 타인.타세계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속에서 희노애락을 느끼며 살아가게됩니다.

 

이렇게 자신을 뒤돌아보지 않고 이리저리 부딛치며

무의식적으로 살다가 더큰 울타리..즉 사회란 더 큰 울타리..벽을 만나게 되면

그때부터 갑자기 혼란에 생깁니다.

이것은 청소년기의 질풍노도의 시기(성체성의 혼란)와는 차원이 다른

보다 본질적인 자신 내면(의식)의 혼란을 가져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가치관.테두리속에서

자신을 내맡기며 잘? 살아갑니다.

이것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왜냐면 그냥 그렇게 태어나서 죽어가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님이나 저나...또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태어났고 존재한다는 그 숭고한 사실에 의미를 두고

그 존재에 대해 고민을 하고 떄론 우울과 고통을 느끼고 또 그것을  

해결할려고 노력합니다.

 

과연 이런 사람들이 주위에 몇명이나 될까요.

 

목사님..신부님.스님등 신부님..그리고 삶에 대한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자.철학자.예술인

외에 지금 우리 주위 친구.지인들중에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

 

하핫...정말 제 주위에 저랑 이런 생각을 공유하는 친구가 별로 없어요.

이것은

 

친구들도 그저 수많은 사람중에 그들이고, 나와는 그저 가끔 만나서 수다떠는 그런 존재.. 내 깊은 외로움을 알까?이런생각도 들고.. 그래서 저의 속 얘기는 많이 하지는 않습니다.

 

라고 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저도 제친구들에게  비슷하게 느꼈었죠.

그래서 저도 제가 고민하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친구들에게 한번도 한적이 없었으니까요.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아..그친구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 나름대로 삶에 대한 자신의 방향을 잡아 가고 있구나 알게 되었고

지금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방식들을 이야기 하며 서로서로 돕는

좋은 친구가 되었죠.

 

아마 님께서도 시간이 지나면 친구들과  서로 본질적인 고민들에 대해

이야기 할수 있는 날이 올것입니다.

 

말이 잠시 새버렸네요.

 

님처럼 그런 존재감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당장에는 상당히 힘들고 우울하고 고통스럽더라도

해결할려고 노력하고 서서히 자신 나름대로의 깨달음이 생기고

그러다보면 주위 어떤 친구.사람들보다 

자신 존재에 대한 아름다움.. 삶에 대한 행복이 생길것입니다.

 

지금의 고통은 나중 수많은 돈으로도 살수 없는  고귀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그 고귀한 지혜로 주위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될것입니다.

 

그러니 힘내시기 바랍니다.^^

 

아시겠죠.그 고통을 달게 생각하세요.

그리고 자신의 존재.자아정체성을 하나하나씩 깨달아가세요.

 

앞서 저도 몇년을 방황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수많은 감동적인 책들을 읽고.

아름다운 음악을 찾아 듣고(이때부터 클래식을 제대로 접하는 계기가 되었기에

너무나 소중한 경험들이었죠.)

여행도 하고..

 

하지만 이런 경험들은 그 순간에만 고민을 ..고통을 벗어나게 해주었을뿐

다시 실제 생활로 돌아가 이런저런 일.사람을 부딪치다 보면

또 나와 삶에 대한 괴리감에 또다시 우울.고통에 빠졌었죠.

근데 이전보다 더 심해지더라구요.

오죽이나 했으면 난 제정신이 아니다 ..

그래 정신병치료까지 받아볼려고 했을 정도니까요.

 

이런 저런 저 나름대로의 치열한 삶의 반복속에 서서히 해결책이 보이더군요.

20대 후반에서야 말이죠.

 

이것을 이야기하면 너무 사소한 것이기도 하고

이 종교 잘났다 는 식으로 빠지기에

님께서 교인이라 하시니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지금 제가 느낀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님께 진심으로 완전한 해결을 아니더라도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

 

 

 

 

 

자아정체성을 찾을 려고 합니다.

자아..진정한 자신의 모습..어떤 것에도 영향받지 않고...독립적이며..

완전한 그 무엇..

 

님...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님의 진정한 모습은

님만의 것이 아니라 주위 모든 생명과 함께 하는  존재라구요.

 

님께서 자신만의 그 무엇을 찾을려고 한다면 ...찾을려고 할수록

나와 타인.주위세계와의 단절이 생김니다.

 

불교에서는 무아(無我)와 연기로 자신의 존재.그리고 이세상 모습에 대해 설명합니다.

 

무아......단순히 나란 없다는  무의미한 나 를 말하는것이 아닙니다.

 

무아란

나란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

저마다가 인연이되어 서로서로 상호 교류,의지하는 존재란 뜻입니다.

 

인간은 편의를 위해 이름.단어를 만듭니다.

그래고 모든 존재(눈에보이는 것외에도 추상적인 것까지)에 이름을 부여합니다.

 

눈에 보이는것은 모두 실체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 실체는 변하는

것으로압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것에는 이름을 붙여 마치 그것이

어떤 것에도 영향받지 않은 독립적이고 고정된 존재.개념으로 파악합니다.

 

하지만 현대 과학이 발달하면서 하나씩 밝혀지고 있죠.

 

마음이 고정적입니까..

그럼 시간이 고정적일까요.공간은요..

아인슈타인이전에는 시.공간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고 따로따로 존재하는것으로 봤지만

아인슈타인에 의해 시간도 공간도 서로 영향을 받고

변하는 개념으로 밝혀졌지요.

 

우리 인간도 부모님께서 이름(예.김철수)을 지어주어

마치 나 가 곧 김철수 로 단순화시켜 마치 김철수가 영원할 것 같지만

실제 한 인간(김철수)를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세포들을 보면 태어나고 죽고 하지요.

 

이렇듯 늘 우리인간은  생과사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은 주위 어떤것과도 따로 따로 ..고정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 모든 생명과 서로 영향을 받고 존재하게 됩니다.

이것이 연기입니다.

 

나란 고정된 아상을 버리고

주위 모든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 나...

 

이것이 진정한 나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면 나와 나무..꽃..하늘..하찮은 미생물..

그리고 친구..부모님..

 

모두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연결된 소중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되리라 생각입니다.

 

그런 자각을 하면 더이상 남이 아닙니다.

 

동시에 나는 단순히 이 작은 한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주위 모든 생명..하늘..우주와도 연결되어 있음으로 나아갑니다.

 

나란 존재는 원래 우주와 같은 한없이 넓고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깨닫는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작은 습관하나가 생기면 그 습관을 치유할려면 얼마나 힘들고 오랜시간이 걸리던가요.

 

하물려 이십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외부에서 ..타인에게 길들여져 와서

그 작은 몸에만 머무는 나를 만들었는데 그런 습관을 치유할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하지만 치유할려고 하는 노력..그를 통해 흘린 땀들은

자신이 만든 숭고한 땀이기에 기쁩니다.행복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지금의 고통은 더 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한 ...

고통받은 다른사람들을 보살피고 감싸안울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거듭나게하는

아름다운 고통임을 하시고 힘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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